같은 환자, 그때그때 다른 일

같은 환자라도, 지금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은 그때그때 다릅니다. 무엇이 그것을 정할까요. 객체의 ‘상태’입니다.

2부에서 말씀드렸듯, 온톨로지에서 객체는 단순한 데이터 묶음이 아니라 상태를 가진 존재입니다. 한 환자는 상담 중일 수도, 수술 확정일 수도, 10회 패키지의 4회차 진행 중일 수도 있습니다. 한 레이저 장비는 가동 중일 수도, 점검 중일 수도, 사용 불가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상태가 단순한 표시가 아니라, 지금 할 수 있는 행동의 범위를 열고 닫습니다. 수술 전 확인이 끝나지 않은 환자에게는 수술 안내가 나갈 수 없고, 점검 중인 레이저에는 시술 예약이 잡힐 수 없습니다. 상태가 곧 행동의 문지기입니다.

값이 아니라 상태를 기록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값이 아니라 상태를 기록합니다.

레이저 팁의 누적 사용량이 몇이라는 숫자보다, 그것이 ‘정상’인지 ‘교체 임박’인지가 행동을 정하기 때문입니다. 필러가 몇 개 남았다는 숫자보다, 그것이 ‘충분’인지 ‘최소 재고 이하’인지가 발주를 정하기 때문입니다. 숫자는 사람이 다시 들여다보고 해석해야 하지만, 상태는 그 자체로 다음 행동을 부릅니다. 원장님이 매일 보시는 보고서의 숫자들이 정작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숫자에는 기준이 없고, 기준이 없으면 행동이 없습니다.

바뀌어 온 과정이 그대로 남습니다

상태 중심 기록에는 한 가지 힘이 더 있습니다. 상태가 바뀌어 온 과정의 기록입니다.

값을 쌓는 시스템은 “그날 수치가 얼마였다”를 남기지만, 상태를 쌓는 시스템은 “언제, 무엇 때문에, ‘상담 중’에서 ‘수술 확정’으로, ‘정상’에서 ‘주의’로 바뀌었다”를 남깁니다. 며칠 뒤 무슨 일이 생겨 되짚어 볼 때, 이 차이는 결정적입니다. 값의 나열 앞에서는 다시 해석 논쟁이 벌어지지만, 바뀌어 온 과정의 기록 앞에서는 그날 그 시점에 병원이 무엇을 알았고 무엇을 했는지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병원의 하루하루가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볼 수 있는 역사로 쌓이는 것입니다.

지금 현장에서 도는 방식

이것은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운영을 지원하는 T 병원에서 지금 그렇게 돌아갑니다.

한 환자의 수술 준비는 여러 상태를 차례로 지납니다. 안내가 나가고, 수술이 가능하다고 판정되고, 사전 확인이 끝나고, 최종 안내가 나가고, 확정에 이릅니다. 운영자가 상태를 한 칸 바꾸면, 그 상태에 맞는 안내가 환자에게 자동으로 전달됩니다. 상담자가 문자를 일일이 쓰지 않습니다. 상태가 바뀌는 것이 곧 행동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소모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품목의 재고가 ‘최소 재고’ 상태로 내려가면 발주가 자동으로 준비됩니다. 사람이 매번 창고를 확인하고 수량을 세지 않아도, 상태가 그 행동을 먼저 부릅니다. 수술 당일 아침에 소모품이 비어 있는 일이, 그래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원장님의 병원에서라면 이 자리에 실이, 필러가, 레이저 팁이 놓일 것입니다.

행동을 부르는 상태는 진료실 밖에도 있습니다

원장님께 가장 익숙한 장면 하나를 더 들겠습니다. 견적까지 받고 “생각해 보고 연락드릴게요”라며 돌아간 환자입니다.

이런 환자는 어느 병원에나 매일 생깁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대부분의 병원에서 이 환자는 상담실장의 기억이나 수첩, 엑셀 어딘가에 남습니다. 바쁜 주가 지나가면 잊히고, 몇 주 뒤 그 환자는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받습니다. 광고비를 들여 데려오고, 상담에 한 시간을 쓰고, 마지막 한 걸음에서 놓치는 것입니다.

상태 중심의 병원에서는 이 환자가 ‘결정 대기’라는 상태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상태가 행동을 부릅니다. 정해 둔 시점이 되면 상담실장에게 연락할 차례가 자동으로 잡히고, 환자에게는 정해 둔 안내가 나갑니다. 상담실장이 성실해서가 아니라, 구조가 잊지 않기 때문에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의 기억력에 기대던 일이 상태의 일이 되는 순간, 병원의 성과는 그날그날의 컨디션에서 분리됩니다.

자동은 추측이 아닙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해 두겠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자동’은 AI가 알아서 추측해 움직인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상태에서 어떤 행동이 나가는지는, 그 병원의 운영진과 우리가 미리 정해 구조 안에 고정해 둔 것입니다. 자동으로 실행되는 것은 사람이 미리 내려 둔 판단이지, 기계의 즉흥적인 추측이 아닙니다. 1부에서 말씀드린 환각 없는 AI의 원칙이 여기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새로운 판단이 필요한 순간에는 반드시 사람이 결정하고, 이미 내려진 판단을 반복 실행하는 일만 시스템이 대신합니다. 원장님의 병원이 원장님이 정하지 않은 방식으로 움직이는 일은 없습니다.

상태가 바뀌면 할 수 있는 일이 바뀝니다. 그래서 우리는 값이 아니라 상태를 기록하고, 사람의 판단을 구조에 담아 시스템이 실행하게 합니다.